버팀목 전세자금대출
정부의 가계대출 억제 정책으로 인한 은행권 금리 인상 경쟁이 신규 주담대에서 대환대출(갈아타기)까지 옮겨붙었다. 대환대출은 기존 대출을 상대적으로 금리가 낮은 다른 은행의 대출로 갈아타는 것이다. 국민 신한 하나 우리 농협 등 5대 은행의 고정금리형(5년) 비대면 주담대 갈아타기 금리는 이날 연 3.5~3.95%로,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억제 정책이 본격화된 지난 7월과 비교해 은행별로 0.06~0.52%포인트 올랐다.
은행들이 내주는 대출의 조달 원가에 해당하는 채권 금리는 오히려 하락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5년 만기 은행채(무보증·AAA) 평균 금리는 지난 14일 연 3.177%로, 7월 1일(연 3.49%) 대비 0.313%포인트 내렸다. 시장 원리를 따랐다면 지난달보다 주담대 갈아타기 금리를 오히려 0.3%포인트 안팎 낮출 수 있었다는 의미다.
조달 원가가 하락했는데도 은행들이 비대면 갈아타기 금리를 인상하는 이유는 정부의 가계대출 억제 정책에 따라 대출 문턱을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은행들이 각각 가계대출 증가세를 억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다른 은행에서 갈아타기로 대출이 넘어오면 당국의 눈총을 받게 된다”며 “갈아타기 금리도 신규 대출과 마찬가지로 올릴 수밖에 없다”고 귀띔했다.
정부는 지난 1월까지만 해도 은행권 주담대 금리 경쟁을 촉진하고 가계 이자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비대면 주담대 갈아타기 시스템을 구축하고 은행들의 참여를 독려했다. 당시 은행들은 비대면 주담대 갈아타기 상품을 별도로 내놓고 금리 인하 경쟁을 펼쳤다.
하지만 잠재적 차입자가 쏟아져 나오고 가계부채 급증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하자 정부는 지난달 돌연 입장을 바꿨다. 이처럼 정부가 불과 반년 사이에 완전히 다른 주문을 내놓은 것을 두고 ‘관치 금리’를 일삼는 정부가 자가당착에 빠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경쟁 촉진을 이유로 비대면 주담대 갈아타기를 도입한 1월도 이미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이 10개월 연속 전월 대비 증가했을 정도로 가계대출이 폭증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정부의 뒤늦은 가계대출 억제 정책에 은행들은 최근 하루가 멀다고 대출 금리 인상에 나서고 있다. 5대 시중은행은 지난달 1일부터 이날까지 50일 동안 신규 주담대와 전세대출 가산금리를 총 19회 올렸다. 하나은행은 오는 22일 주담대 금리를 최대 0.6%포인트 인상하기로 결정했고, 신한은행은 21일 금리 변동 주기가 3년 이하인 주담대 상품의 금리를 0.05~0.1%포인트 올리기로 했다. 인터넷은행 케이뱅크는 이날 주기형(5년) 주담대 금리를 0.14%포인트 인상했다.
이미 주택 매수심리가 살아난 상황에서 은행권의 자체적인 대출 금리 인상만으로는 가계대출 억제를 이끌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주택 매수를 결심한 개인이 금리가 0.5%포인트 올랐다고 매수를 철회할 가능성은 작다”며 “가계대출 증가세를 억제하기 위해선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산정 범위를 확대하는 등 근본적인 대책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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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의 올해 1분기 중·저신용자를 위한 사잇돌대출 공급액이 지난해 1분기보다 40%가량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시중은행이 외면한 사잇돌대출은 인터넷전문은행이 메워나가며 공급액을 채웠다.
사잇돌대출은 SGI서울보증에서 대출원금을 보증해 주는 정책금융 성격의 중금리 대출 상품이다. 근로자(연소득 1500만원 이상), 사업자(연소득 1000만원 이상), 연금소득자(연간 수령액 1000만원 이상)에게 연 6~10% 금리로 1인당 최대 2000만원까지 대출을 해준다. 사실상 제1금융권의 대출이 불가능한 4~10등급의 중·저신용자를 위한 대출상품이다.
24일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5대 은행이 올해 1분기 공급한 사잇돌대출은 18억7000만원으로, 지난해 1분기(31억2000만원)와 비교해 40.06% 감소했다. 은행별로 살펴보면 신한은행이 7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우리은행 4억7000만원 ▲KB국민은행 3억3000만원 ▲하나은행 3억1000만원 ▲NH농협은행 6000만원 순이었다.
은행권 사잇돌대출 공급은 시간이 갈수록 감소하는 추세다. 5대 은행은 지난해 2분기 취급한 사잇돌대출 공급액은 27억2800만원, 3분기 22억4000만원, 4분기 18억5000만원으로 꾸준히 감소했다.
은행권이 사잇돌대출 빗장을 걸어 잠그는 데는 지난해부터 고금리가 이어져 대출 자산 부실이 커지자 연체율 등 위험 관리를 강화하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1월 말 국내은행 원화 대출 연체율은 0.45%로 지난해 말 0.38% 대비 0.07%포인트 상승했다. 전년 동기 대비(0.31%)와 비교해도 0.14%포인트 오른 수치다. 은행 연체율은 2022년 6월 0.20%까지 내려갔다가 이후 계속해서 상승하는 추세다. 지난해 11월 0.46%를 기록해 4년 만에 최고치까지 오르기도 했다.
아울러 사잇돌대출은 신용점수 요건이 강화된 이후 수요와 공급이 줄어들고 있다. 금융 당국은 지난 2022년 사잇돌대출 공급액 70%를 신용점수 하위 30% 이하 차주로 채우게 요건을 강화했다. 기존에는 사잇돌대출 이용자 대부분이 1~3등급 고신용자였는데 고신용자의 사잇돌대출 이용이 어려워지면서 수요가 크게 줄어든 것이다. 해당 규제 이후 SGI서울보증의 보증서 승인율이 낮아지면서 사잇돌대출 공급이 줄었다는 게 시중은행의 설명이다.
저축은행도 상황은 비슷하다. 저축은행중앙회에 따르면 지난해 저축은행업계에서 취급한 중금리대출 잔액은 총 7조3717억원으로 전년 동기(11조4407억원) 대비 4조690억원(33.6%) 급감했다. 저축은행의 중금리대출 잔액에는 정책보증대출인 사잇돌대출이 포함돼 있다. 저축은행업계의 경우 여신 건전성 지표가 악화하고 높은 조달금리 여건이 나아지지 않은 상황에서 리스크가 큰 중·저신용자 대출 비중을 줄여야 연체율 관리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금융권에서 그나마 사잇돌대출을 적극적으로 제공되는 곳은 정책적으로 중·저신용자 대출 목표치가 있는 인터넷전문은행이다. 사잇돌대출을 취급하지 않은 카카오뱅크를 제외한 인터넷전문은행 2사(케이뱅크·토스뱅크)의 올해 1분기 사잇돌대출 공급액은 661억원으로 시중은행보다 36배 많았다. 공급 건수 역시 1만5626건으로 시중은행(280건)의 55배에 달했다.
은행권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고금리가 이어지면서 연체율 등 위험 부담이 커지면서 사잇돌대출과 같은 서민금융상품 취급이 줄어든 경향이 있다”면서도 “다만 은행에서 사잇돌대출 신청을 받아도 서울보증에서 보증서가 나가야 대출이 승인되는데, 5대 은행을 합쳐도 사잇돌대출 공급액이 18억원 규모인 것을 보면 보증기관의 저조한 승인율이 주된 원인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